평창 : Peace Over Window - 장 [Jang]

 
 

 

장 [íÞ]

영동고속도로 사업을 추진하며 진행된 화전이주사업은 산에 터전을 잡은 많은 이들을 몰아냈고, 비슷한 시기 서울에 유입되던 이농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공업화’로 새로운 삶을 위해 도시를 찾았다던 이들은 서울의 산등성이와 공지, 국유지등에 이른바 ‘달동네,’ 혹은 ‘판자촌’을 형성하며 자리를 잡았고,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도시빈민이 1,000만 명을 육박했다. 이 즈음 서울은 도시빈민이, 농촌은 젊은 인구 이탈로 인한 고령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교통의 발전과 인구 이탈, 한국의 근대화를 겪은 평창이 변화된 후 생산하는 궤적을 추적하는 것이 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인구 이탈과 교통의 발전의 영향을 5일장에서 살폈다. 평창의 장들은 예부터 강릉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까지 시장경제가 발달해, 평창군의 5일장들은 번영을 누렸던 지역이었다. 특히, 당시 가장 번영했던 곳은 단연 ‘대화장’인데, 옛말에 “서울 동대문 밖에서 대화장을 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해방과 근대화를 지나오며, 그리고 영동고속도로의 건설을 관통하며 평창의 5일장들은 옛 명성이 조금씩 바래왔다. 

 

나는 이번 작업에서 5일장들을 관찰하며 5일장을 들르는 이들이 시장에 현재하며 그려낸 궤적을 담았다. 상인과 손님이 움직이는 동선, 그리고 진열된 상품들이 움직이는 모습들이 궤적을 그리며 흐릿해진다. 경계가 불분명한 공간을 생산해내는 사람들과 그 공간에 방치된채 실재하며 형체를 유지하는 무생물들 사이의 간극에 집중했다. “장 [íÞ]”은 형태와 경계가 모호하여 그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워진 궤적들과, 유기된 듯 방치되어 형체를 유지하는 사물들을 담아냄으로서, 영동고속도로 건설과 화전이주사업을 거치며 평창에 남은 것들과 남지않은 것들을 탐구하며 기록해낸 결과물들이다.